2016/12/5 월요일
#1
생각보다 일찍 잠들지는 못했다. 추워서였나? 그렇다기엔 전기장판이 있는데.. 새벽에 몇 번 깼다 다시 잠들었다. 알람이 울리는 7시에 창밖을 보니 안개가 자욱했다. 마음 속으로 소리를 지르며 기뻐하다가 다시 잠들었다. 30분쯤 뒤에 일어나보니 안개는 모두 사라져버렸다. 너무 아쉽지만 잠이 먼저였기에 잠시나마 기뻤던 것으로 만족:)
바닷가에 떠오른 해를 보러 다녀왔다. 썰물 때였는지 물이 꽤 많이 빠졌다. 그래서 먼 곳까지 걸어나가 사방을 둘러보니 세상에 나 혼자인 것 같아 기분이 좋더라. 생일날 제주 바다에서 일출보기 성공. 한참을 보다가 다시 동네산책.
#2
내가 묵었던 날의 게스트하우스 조식 : 샌드위치 샐러드 쥬스or커피or우유
쭈구리라 몇 마디 없이 둘러보다가 조식만 먹고 나왔지만.... 맛있게 잘먹었어요 사장님!
씻고 짐을 챙겨나와 마당에서 편지를 쓰며 햇빛쬐기:)
#3
가고싶은 식당의 오픈까지는 시간이 좀 남아서 무얼할까 하다가 지난 번에 가지 못한 책방에 들렀다. 숙소에서 멀지 않은 곳. 공간 하나하나에 손길이 느껴지는 곳이었는데 책이든 꽃이든 소품이든 종류별로 하나씩 쟁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고민을 하다가 선물할 책 한 권과 소품하나를 사서 나왔다. 새로운 곳에서의 기억을 함께 포장해 나오는 것 같아 왠지 기분이 좋아졌다. 포장된 책을 살랑살랑 흔들며 다니 골목 여기저기를 다녔다. 공간이 좋아서 사진은 거의 다 필름으로 찍었구만.
#4
내가 가려고 했던 식당은 종달리에 있는 순희밥상. 이 곳도 지난번에 왔을 때 지나쳐갔던 곳이다. 그래도 생일이라 미역국을 챙겨먹기 위해 일부러 다시 찾아왔다. 성게미역국이라 혹시 비릴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주문했는데 먹어보니 다행히도 비린맛은 전혀 없었다:) 그리고 반찬이 아주 입맛에 잘 맞았다!! 계란조림도 좋아하고 방금 양념 얹은 깻잎도 좋다ㅠㅠ 다음에 종달리에 가면 또 들러야징
그날의 메뉴와 반찬은 필름 사진에.
#5
작년에 비오는 날 들렀다가 자리가 없어 그냥 나와야 했던 카페에 왔다. 그때 갔던 <바다는 안보여요>에 가려다가 그냥왔다. 마침 사장님 식사시간이셔서ㅎㅎ 여전히 쿨내나는 사장님! 너무 좋아요ㅋㅋㅋ 한참 해가 따가운 시간이라 더웠지만 창가에 앉아보았다. (12월 초의 제주는 섬이나 바닷가를 제외하고선 매우 포근하다. 물론 맑은 날의 경우) 아포가토를 시켜 먹으니 그래도 좀 견딜만 하군. 잠시 구름이 드리우기도 한다. 다른 건 다 괜찮은데 음악이 너무 크다.. 최신가요를 많이 듣지 않는 편이라 가요가 크게 틀어져 있으니 좀 정신이 없달까. 사장님이 좋아하는 곡들일까. 밖에 고양이가 어슬렁거린다. 약간 돼지고양이ㅋ
계속 창가에 앉아있으니 얼굴이 점점 익어가는 듯. 구워지고 있다.. 이번엔 누구에게 편지를 써볼까나.
#6
버스 시간의 압박으로 종달리와 급하게 안녕한 뒤, 성산항을 통해 우도에 왔다. 오늘은 미세먼지가 많은 날이라 그런지 매우 흐렸다. 바람은 또 왜그렇게 부는 것인가. 아이폰 날씨어플에 해도 구름도 아닌 바람 표시가 있었는데, 정말 해와 구름보다 바람이 더 잘보이는 것 같았다.
버스에서 내린 뒤 성산항 터미널로 걸어오는 길에 중국이 두 분이 우도를 가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물었다. 내가 가는 방향이라서 이 쪽으로 쭉 가시면 된다고 했다. 어디서 여행기를 들으면 친절한 외국인이 가던 길 반대편인데도 동행으로 길 안내를 해주었다- 는 뭐 그런 일들이 있던데 난 그러진 못했다. 심지어 그분들 나보다 먼저 도착... 적극적으로 안내해 줄 것도 아니면서 계속 눈에는 밟히는 통에 시선으로 살폈다. 티켓은 제대로 끊는지, 배는 타는지, 제 때 내리는지, 늦게라도 내리는지. 섬에 도착한 뒤로는 못 봤지만. 난 같은 방향으로 가면서도 아는 척을 안 하는, 그다지 친절하진 않은 외국인(현지인?)이었다. 이런 것에도 성격이 나오는구나. 적극적이지도 못하면서 되게 질척거리기는.
숙소로 오는 길에 지도 어플이 안내하는 길로 가고 있는데 한 어르신이 어디로 가는지 물으셨다. 게스트하우스에 간다니까 그 쪽 말고 저 쪽으로 가는게 나을 거라고 하셨다. 이미 들어선 길이라 이 길이 아니냐고 물었더니 그 길은 비포장길이라고 하셨다. 그냥 가죠 뭐, 했는데 가다보니 길 한 쪽에 왠 쓰레기 더미가... 종달리 숙소에 갈 때도 을씨년스러운 갈대밭을 가로질러 갔었는데... 지도 어플은 빠른 길이라면 길의 상태는 그다지 고려하지 않나보다. 하하 기계 나부랭이 녀석.
#7
숙소에 짐을 두고 바닷가에 가서 저녁이나 먹을까 했는데, 목적지였던 수제버거 집의 영업이 이미 끝나있었다ㅠㅠ 우도는 제주도에서도 퇴근이 빠른 곳임을 잊은 것인가ㅠㅠ 종달리가 예외였구나ㅠ 갑자기 그리워지는 종달리.
검색해보니 작년에 있던 카페가 화덕피자 집으로 바뀌어서 저녁까지 여는 것 같았다. 열심히 걸어서 도착하니 오픈!! 마지막 손님으로 마르게리따를 시켜먹었다. 한 끼에 거의 2만원ㅋㅋ 이번 여행엔 잘 먹는구나:) 너무 많은 것 같았는데 두 조각 남기고 다 먹었다. 남은 것은 내일 간식으로 포장.
그 이후부터가 중요하다. 유자청차를 손에 들고 등대를 계속 보기위해 살짝 돌아가는 길로 걷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가로등은 드물고 바람은 거세게 불어서 조금씩 걱정이 되는 중이었는데 언덕길에 접어드니 큰 백구 세마리가 주르륵 서 있었다. 멀리서부터 짖기 시작하더니 지나친 뒤로는 몇 걸음 씩 따라오며 짖어댔다. 돌아서 나가거나 도망가면 더 따라올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에 최대한 불쌍한 척하며 앞만 보고 걸었다. 스쳐 지나갈 땐 그래도 괜찮았는데 따라오며 바로 뒤에서 짖어대니 무서웠다. '그래 내가 얘들의 공간을 침범한거야 그래서 그런거야, 사실은 착한 강아지일거야' 라고 계속 생각하면서 두려움을 쫓아냈다.
반쯤 걸어왔을까. 가로등 불빛과 컴컨한 길을 번갈아 지나치며 걷고 있는데 어떤 차가 나를 지나쳐서 갑자기 멈췄다. 으잉? 하고 신경 안쓰는 척 앞만 보고 걸었다. 주변 소리가 좀 들리면 괜찮을텐데 바람이 너무 세게 불어서 주변이 모두 바람소리에 묻혀버렸다. 길은 어둡지, 소리는 안 들리지, 차는 뒤에 서있지, 갈 길은 한참이지. 순간 무섭다는 생각 커졌다. 사실 백구 세마리 때부터 백구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쯤 무서웠는지 다리에 힘이 풀려버렸지만 아닌 척 참고 있었는데 더 이상 아닌 척이 힘들었다. 티 안나게 조금 속도를 냈다. 음료수를 던지고라도 전력질주 할 마음의 준비를 했다. 거리가 좀 생기자 뒤를 흘깃 돌아보며 유턴을 하는지 그냥 가는지 눈치를 봤다. 심지어 맞은 편에서 차가 오자 수풀로 숨기도 했다. 혹시 같은 사람들일까봐. 시간이 멈춰버린 것 같은 길을 지나고 돌아보니 다행히 그 차는 떠나고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두려움은 남아있었다. 얼마 안되는 시간이 그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왜 그렇게 길게 느껴지는지. 정신없이 몰아쳐대는 바람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니었을까.
홀로 걷는 길이 끝나고 여러 차와 사람들이 보일 때 쯤 안도했다. 으아 살았다. 어쩌면 그 차는 길을 헷갈려서 길을 찾느라 그랬을지도 모르고 여행객이 너무 밤늦게 다니는 것을 보고 걱정하느라 그랬을지도 모른다. 심리적인 이유로 밤늦게라고 표현했지만 사실 저녁 6시였다..... 가혹한 제주도의 12월 저녁 같으니라고.... 뭐가 되었든 나는 너무 무서워서 울고싶을 정도였다. 그래서 생각했다. 한국이니까 이렇게 어두운 때에 (저녁 6시입니다) 돌아다니지 다른 데서는 턱도 없다, 해지면 바로 숙소로 돌아가 잘 준비나 해야할 것이다. 그리고 결혼을 빨리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돌아다니는 것을 포기할 수 없으니 한 명 더 같이 있으면 좀 덜 무섭지 않을까ㅠㅠ 활동량이 비슷한 사람을 만나야겠구나, 생각했다. 당장 결혼이라도 하고플 정도로 무서웠다ㅋㅋㅋ 세계일주는 못 갈것 같아 제길ㅠㅠ
#8
숙소의 이불이 너무 새하얀 것이라 여기서 뭔가를 쓰기가 두렵다. 펜자국이라도 남으면.....으어어어
미친듯이 바람을 맞으며 걸어들어오니 감기기운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핫팩을 하나는 배에 붙이고 하나는 목에 감싼 채로 일기를 쓰고 있다. 졸려서 글씨는 엉망이지만... 얼른 자야겠다. 지금은 고작 8:30이지만ㅋㅋㅋㅋㅋ 내일은 우도봉에 올라가서 일출을 보려고 했는데... 이 날씨에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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